세상이 말세란 소리는 많이 들어봤지, 직접 절망적인 세계를 겪어보진 않았던 것 같다. 저성장시대로 접어들면서 매년 실업율은 떨어지고 하루하루 최악을 향해 달려가는 듯 해보이지만 어쨌든 지금 나는 기본적으로 의, 식, 주는 해결하고 있었으니까. 1984는 조지 오웰이 1940년도에 약 40년 후 발생할 수 있을 디스토피아에 대해 그린 소설이다.
주인공 윈스턴은 오세아니아의 당원으로 기록국에서 일하며 현재에 맞는 과거의 출판물들을 교묘히 조작하는 일을 한다. 매시각각 텔레스크린의 통제를 받으며 성욕까지 억제시키는 상황에서 윈스턴은 조용히 몰래 산 수첩을 꺼내 적기 시작한다. 왜 이렇게 되어야만 하는지 의문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방법은 안다. 그러나 이유는 모른다.
의문은 어느날 우연히 발견한 종이조각으로부터 시작됐다. 오세아니아는 항상 전쟁 중이지만 그 상대는 당의 정책에 따라 교묘히 바뀐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다. 그런데 윈스턴은 일을 하던 중 그 과거 조작의 결정적 증거를 포착하게 된다.
그러던 와중 윈스턴은 줄리아라는 여자를 만난다. 줄리아는 겉으로는 열성적인 당원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당이 하는 말은 모두 엉터리라고 믿는다. 윈스턴과 다른 점은 그녀는 당이 자신을 방해하지 않는 이상 당의 정책을 충분히 이용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둘은 텔레스크린을 피해 사랑을 나누고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하며 당을 배반한다.
p235-236
"그들이 할 수 없는 일이 한 가지 있어요. 그들은 당신이 무엇이든 말하게끔 할 수는 있지만, 믿게는 할 수 없어요. 당신의 속마음까지 지배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 당신 말이 맞아. 사람의 속마음까지 지배할 수는 없지. 만약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게 가치 있는 일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면, 비록 대단한 성과를 얻지는 못하더라도 그들을 패배시키는 셈은 되는 거야."사람들이 그들을 자신들과 똑같게 개조시킬 수 없듯 그들 또한 사람들의 말과 행동과 생각을 하나하나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하더라도, 인간의 속마음까지 공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속마음은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신비로움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의 폭력성 앞에서 두사람은 무자비하게 파멸의 길로 빠져든다. 그들을 구원해주리라고 믿었던 오브라이언이라는 내부당원은 사실 빅브라더를 뼛속부터 추종하는 열성신자였다. 그들은 형제단, 골드스타인이라는 혁명의 희망이 사실은 거짓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것은 예측된 일이기도 했다. 윈스턴과 줄리아는 일탈을 하면서도 언젠가 자신들은 사상경찰에 의해 체포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었다. 다만 그들이 생각하지 못한 일이라면 사랑이라는 그들만의 세상 조차 당이 가하는 폭력 아래 무너지고 만다는 사실이었다.
읽으면서 처음에는 빅브라더가 내세우는 슬로건인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이라는 슬로건을 이해할 수 없었다. 1984년은 내가 이 책을 읽는 지금 과거이니까, 적어도 2016년 지금의 상식으로는 말이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1984에 나오는 통제사회가 현재와 동떨어진 사회라고만 생각할 수 없었다. 곳곳에 설치된 CCTV, 사생활이 쉽게 노출될 수 있는 SNS. 우리는 스스로를 드러내면서 스스로 감시당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사생활이란 매우 가치 있는 거예요."
채링턴 씨가 말했다.
"누구나 때로는 혼자 있을 곳을 갖고 싶어 하지요. 그런데 누군가 그런 곳을 갖게 되면, 그걸 알고 있는 사람은 남에게 누설하지 말아야 해요. 그건 상식적인 예의이지요."
또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이나라 대한민국에 살고 있어서일까. 전쟁이 체제의 안정적 유지를 위해 이용되고 있다는 내용에 동감했다. 전쟁은 사람들을 위험에 처하게 하고 기반시설을 무너뜨리는 등 서로에게 좋을 게 없다는 걸 알면서도 권력을 위해 그 자리에 굳건히 자리잡으며 이용되고 있다. 언론에서 곧 전쟁이 일어날 것 마냥 조장하고 있는 모습을 본 게 한두번이 아니다.
윈스턴과 줄리아의 대화를 읽으면서 세대 간의 차이를 느끼기도 했다.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와 어렴풋이 기억만 하는 세대, 그리고 그것조차 겪지 못한 세대. 비단 전쟁 뿐만 아니라 그로부터 파생되는 정부의 이념과 정책노선에 대해서 심각성을 느끼는 정도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을 중요하게 여겨야 하고 관심을 가져야 할지에는 모두가 귀를 곤두세우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로 영향을 받는 데에는 정도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읽으면서 윈스턴과 줄리아의 중간 정도에 위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언론정보학을 전공해 언론의 조작과 게이트키핑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 탓일 거다.
그러나 나도 정부의 교묘한 정책에 속지 않는 똑똑한 시민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미 넘쳐나는 정보와 하루에도 빠르게 뭔가가 일어나는 이 세상은 조작하기 쉬운 사회로 변해버렸다. 조금만 한눈 파는 어느 순간, 멀게만 느껴졌던 디스토피아가 닥쳐오는 건 코앞일거다. 1984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조지 오웰이 던져주는 강력한 경고다.
책갈피
p28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p47
그는 비극을 옛날, 그러니까 사생활과 사랑과 우정이 있고 부모 형제가 아무런 이해타산 없이 순수하게 서로 의지하던 시대에나 존재했던 것으로 여겼다. 아무튼 어머니를 떠올리면 그의 가슴은 찢어질 것 같았다. 어머니는 죽는 순간까지 그를 사랑했다. 그는 당시 너무 어린 데다 이기적이기까지 해서 그 사랑에 보답하지 못했다. 어떻게 그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할 수는 없지만, 어머니는 보이지 않는 불변의 사랑으로 자식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했다. 그는 그 같은 희생정신이 오늘날에는 없다고 단정했다. 오늘날에는 공포와 증오와 고통만이 있을 뿐, 감정의 존엄성이나 깊고 미묘한 슬픔 따위는 손톱만큼도 존재하지 않는다.
p101 그들(노동자)에게는 당의 이데올로기를 가르칠 필요도 없다. 노동자들이 강한 정치의식을 갖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노동 시간을 늘리거나 배급량을 줄이는 데 대해서 그들이 자연스럽게 호응하도록 당이 필요할 때마다 이용해 먹을 수 있는 원시적인 애국심뿐이다. 그들은 불만이 있어도 일반적인 사상이 결여되어 있기 떄문에 달리 해소할 방법을 못 찾는다. 그 바람에 엉뚱한 곳을 겨냥하여 투정을 부리는 것이다.
p113
결국 당은 둘 더하기 둘은 다섯이라고 발표하여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믿도록 만들 것이다. 조만간 당이 그런 주장을 하게 되리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들이 현재 처해 있는 상황이 그 같은 주장을 논리적으로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경험의 타당성뿐만 아니라 외적 현실의 존재마저 그들의 철학에 의해 교묘하게 부인될 것이다. 이미 이론에 대한 이론이 상식처럼 되어버렸다. 무서운 것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죽이는 게 아니다. 그들의 견해가 옳을지도 모른다는 게 무서운 것이다. 도대체 둘 더하기 둘이 넷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또 중력이 작용한다는 것은 어떻게 알고, 과거는 변화할 수 없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나? 과거와 외적 세계가 오직 정신 속에만 존재한다면, 그리고 정신 자체가 조절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어떻게 되는가?
p144
위기의 순간에 싸워야 할 것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육체라는 사실에 그는 적잖이 당황했다. 술을 마셨는데도 복부의 통증이 완전히 가라앉지 않아 생각을 체계적으로 할 수가 없었다. 상황이 영웅적이든 비극적이든 외관상으로는 전혀 다를 게 없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전장에서나 고문실에서나 침몰하는 배 안에서나 사람들은 늘 진정으로 싸워야 할 상대를 잊어버린다. 육체가 온 우주를 덮을 정도까지 부풀어 오르고 공포나 고통으로 비명을 지르는 극단적인 경우가 아닌 일상적인 때라도 삶이란 굶주림, 추위, 불면증, 복통, 치통 등을 상대로 순간순간 끊임없이 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p186
그녀의 인생관은 매우 단순했다. 인간은 쾌락을 원한다. 그런데 '그들', 즉 당은 그것을 못 갖도록 한다. 따라서 가능한 한 당의 규칙을 깨뜨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그들'이 사람들로부터 쾌락을 빼앗으려 하는 것 못지않게 사람들은 '그들;의 손아귀에 들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따. 그녀는 당을 증오하는 만큼 혹독하게 욕설을 퍼부었다. 하지만 당이 하는 일 전반에 대해서는 비판을 가하지 않았다. 자신의 사생활을 간섭하지 않는 이상 당의 강령 따위에는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는 식이었다. ...
(그녀는) 당에 맞서는 어떤 조율의 조직화된 반역도 결국 실패하리라고 확신하기 떄문에 그런 것은 어리석은 행위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현명한 것은 당의 규칙을 위반하면서도 끝까지 살아남는 일이었다. 그는 혁명의 시대에 성장하여 아무런 생각도 없이 당을 마치 하늘과 같은 불변의 어떤 것으로 받아들이고, 당의 권위에 저항하기는커녕 토끼가 개를 피하듯 그저 회피하기만 하는, 그녀와 같은 사람들이 젊은 세대에 얼마나 많을까 하고 막연히 생각해 보았다.
p188
윈스턴과는 달리 그녀는 당이 성적 순결을 강조하는 이유를 나름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성본능은 당의 통제를 벗어나 그 자체의 세계를 구축하므로 당은 무슨 수를 써서든 그것을 파괴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성욕을 박탈하면 히스테리를 유발하기 때문에 당의 입장에서는 이를 전투열과 지도자 숭배로 전환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p191-192
그녀는 젊고, 그런 만큼 삶에 대해 아직 기대하는 것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못마땅한 사람을 절벽 아래로 밀어버린다고 해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사실 그렇게 했더라도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
그가 말했다.
"그럼 왜 밀지 못한 걸 지금에 와서 후회하죠?"
"그건 단지 소극적인 것보다는 적극적인 것을 택했으면 하는 심리가 작용한 탓이지. 우리는 우리 자신이 지금 벌이고 있는 게임에서 승리할 수 없어. 하지만 같은 패배여도 더 나은 패배가 있는 법이야."
그의 말에 그녀가 동의할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움찔했다. 그가 그런 식의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녀는 늘 반대했다. 독립된 개인은 결국 패배하고 만다는 자연의 법칙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p194-195
섹스를 하기 위해서 방을 빌리려 한다고 윈스턴이 분명히 말했는데도 그는 충격은커녕 불쾌한 내색도 내비치지 않았다. 대신 허공을 바라보며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늘어놀았는데, 그 태도가 묘해서 그 자신은 안중에도 두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사생활이란 매우 가치 있는 거예요."
채링턴 씨가 말했다.
"누구나 때로는 혼자 있을 곳을 갖고 싶어 하지요. 그런데 누군가 그런 곳을 갖게 되면, 그걸 알고 있는 사람은 남에게 누설하지 말아야 해요. 그건 상식적인 예의이지요."
그는 마치 자기 자신의 존재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는 듯이 공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p213
중요한 것은 고물상 위의 그 방이 계속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 방이 누구의 침해도 받지 않고 거기에 그대로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윈스턴은 그 방에 가 있는 것 같은 안온함을 느꼈다. 그 방은 하나의 세계였고, 멸종된 동물들이 다시 살아나서 돌아다니는 과거의 주머니였다.
p215
현실적으로 도피할 방법은 없었다. 실행 가능한 단 한 가지의 방법인 자살마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터였다. 공기가 있는 한 허파가 움직여서 숨을 쉬게 되는 것처럼 하루하루 미래가 없는 현실에 매달려 사는 것이 어찌할 수 없는 본능인 것 같았다.
p217
그녀는 당의 강령이 자신의 삶을 간섭할 때만 그에 의혹을 품고 반발했다. 그런 데다 진실과 거짓의 차이가 자기에게 별로 큰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당의 공식적인 신화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태도를 보였다.
p220
한마디로 역사는 정지해 버린 거야. 이젠 당이 항상 옳다고 하는 이 끝없는 현재 이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아.
p221-222
윈스턴은 그녀와 이야기하는 동안 정통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면서도 정통적인 태도를 갖는다는 게 얼마나 쉬운 일인가를 꺠달았다. 어떤 면에서 당의 세계관은 그것을 이해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가장 잘 받아들여졌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요구되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도 납득하지 못할 뿐더러 현재 일어나고 있는 공적인 사건에 대해 무관심하기 때문에 가장 악랄한 현실 파괴도 서슴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무지로 인해 정상적인 정신 상태를 유지한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집어삼켜도 탈이 나지 않는다. 그것은 곡식의 낱알이 소화되지 않은 채 새의 창자를 거쳐 그대로 나오는 경우처럼 뒤에 아무런 찌꺼기도 남지 않기 때문이다.
p226
그는 꿈속의 분위기에 흠뻑 젖어서 눈을 감은 채 돌아누웠다. 그것은 마치 그의 전 생애가 비 온 뒤의 여름날 저녁 풍경처럼 펼쳐지는 것 같은, 광대하고 명료한 꿈이였다.
p233
그러나 두 세대 전의 사람들은 역사를 바꾸려 하지 않았고, 그래서 이런 일은 그리 중요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개인적인 성실성으로 삶을 살았고, 아무도 그것을 문제 삼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개인적인 인간관계였으며, 죽어가는 사람을 포옹하고 눈물을 흘리고 한마디 위로의 말을 건네주는 등의 무력한 행위에서도 어떤 가치를 찾을 수 있었다. 문득 노동자들은 아직 이런 상황 속에 살고 있따는 생각이 윈스턴의 뇌리를 스쳤다. 그들은 당이나 국가나 이념 따위에 충성을 바치지 않고 그들 자신에게 충실했다. 그는 비로소 노동자들을 경멸하지 않게 되었다.
p235-236
"그들이 할 수 없는 일이 한 가지 있어요. 그들은 당신이 무엇이든 말하게끔 할 수는 있지만, 믿게는 할 수 없어요. 당신의 속마음까지 지배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 당신 말이 맞아. 사람의 속마음까지 지배할 수는 없지. 만약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게 가치 있는 일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면, 비록 대단한 성과를 얻지는 못하더라도 그들을 패배시키는 셈은 되는 거야."
사람들이 그들을 자신들과 똑같게 개조시킬 수 없듯 그들 또한 사람들의 말과 행동과 생각을 하나하나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하더라도, 인간의 속마음까지 공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속마음은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신비로움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p260 '그 책'의 실체: 과두적 집단주의의 이론과 실제 - 임마누엘 골드스타인 지음
p267
그러나 이 같은 식의 일률적인 부의 증가는 계층적 사회의 파괴를 초래할 위험(어떤 의미에서는 가 자체가 파괴이다.)을 안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적게 일하고 배불리 먹으며 목욕탕과 냉장고가 있는 집에서 자동차와 비행기까지 소유하고 산다면, 사회의 핵심을 이루는 불평등의 구조는 틀림없이 붕괴되고 말 것이다. 만약 부가 일반적인 것이 되면 차별이란 있을 수 없다. 물론 개인적 소유와 사치라는 의미에서 부가 공평히 분배되는 한편으로 권력이 소수 특권계급에 의해 장악되는 사회를 상상할 수는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사회는 오랫동안 안정을 유지할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시간적 여유와 함께 경제적 안정을 똑같이 누리게 되면 빈곤에 허덕인 나머지 사회에 무관심했던 대중이 마침내 눈을 뜨게 되고, 또 자신들의 처지를 생각하게 되면서 결국은 소수의 특권층이 존재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음을 깨닫게 됨으로써 그들을 몰아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계층 사회의 장기적인 존속은 가난과 무지를 전제로 할 때만 가능하다.
p268
전쟁 행위의 본질은 인간의 생명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노동력의 산물을 파괴하는 것이다. 대중을 지나칠 정도로 편안하게 하는 한편, 장기적으로 그들을 지혜롭게 하는 데 사용되는 물품들을 박살내거나 하늘로 날려버리거나 바다 속 깊이 빠뜨리는 것이 전쟁이다. 전쟁에 사용되는 무기가 실제로 파괴되지 않는다고 해도 무기 공장은 소비 물자 생산에 사용될 노동력을 소모시키는 역할을 한다.
p279
하지만 우리 시대의 지배자들은 서로간의 전쟁은 하지 않는다. 전쟁은 이제 지배 집단이 국민을 상대로 벌이는 싸움이며, 전쟁의 목적도 영토의 정복이나 방어가 아니라 사회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데 있다. 결국 '전쟁'이란 낱말은 잘못 해석되고 있는 것이다. 늘 전쟁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사실은 전쟁이 없다는 말이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진실로 영원한 평화는 영원한 전쟁과 똑같다. 대부분의 당원들은 그저 희미하게 이해할 뿐이지만, 이것이 바로 당이 내건 슬로건인 '전쟁은 평화'란 말의 참뜻이다.
p283
쇠퇴기에 들어선 오늘날에도 물질적으로는 몇 세기 전보다 훨씬 풍요하다. 그러나 부가 늘고 인간관계가 부드러워지고 개혁이나 혁명이 있었지만 인간의 평등이라는 점에서는 조금도 발전한 게 없다. 하층계급의 입장에서 볼 때 역사적 번화란 그들의 주인이 바뀌는 것 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 계급투쟁을 해도 그 목적을 달성하자마자 사람들은 또 계급을 나눔.(앞의 내용)
p287
하지만 인쇄술의 발달로 보다 쉽게 여론을 조작할 수 있게 되었고, 이것은 영화와 라디오로 인해 한층 더 용이해졌다. 특히 텔레비전의 발명으로 동일한 기계가 동시에 송수신할 수 있는 기술적 진보가 이루어짐으로써 사생활은 마침내 종말을 고했다. 몯느 시민, 적어도 요주의 인물들을 하루 24시간 내내 경찰의 감시 아래 둘 수 있고, 다른 모든 통신망은 폐쇄시킨 채 정부 선전만 듣도록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정부의 뜻에 완전히 복종하게 하고 의견 통일까지 하도록 강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처음으로 열린 것이다.
p294
당원은 올바른 사상뿐만 아니라 올바른 본능도 갖도록 강요당한다.
p299
누구든 지배를 하려면, 더욱이 그 지배를 계속하려면 현실 감각을 혼란시킬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지배의 비결은 과거의 잘못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힘과 자신의 확고부동한 신념을 결합한 것이기 때문이다.
p334
무슨 수를 쓰든 고통을 더 늘릴 수는 없다. 그리고 어떤 이유로든 심한 고통을 받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다. 바라는 게 있다면 딱 한 가지, 빨리 고통을 멈추어주었으면 하는 것뿐이다. 세상에서 육체적인 고통볻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없다. 고통 앞에서는 영웅도 없다. 절대로 없다. 윈스턴은 쓸 수 없게 된 왼팔을 부둥켜 잡은 채 마룻바닥에서 몸을 비틀며 몇 번이고 그 생각만 되풀이했다.
p347
윈스턴. 자네는 실재란 객관적이고 외적이며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네. 실재의 본질을 자명한 것으로 믿고 있는 거지. 자네느 자신이 뭔가를 보고 있다고 여길 때, 다른 사람들도 자네가 보는 것과 똑같은 것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네. 그러나 윈스턴, 분명히 말해 두지만 실재는 외적인 것이 아닐세. 실재란 어디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라 인간의 마음 속에 있네.
???
그것도 실수를 할 수 있고, 어떤 경우에는 곧 사라져버릴 개인의 마음속이 아니라 집단적이고 불멸하는 당의 마음속에 있지.
p352
아무래도 인간은 사랑받기보다 이해받기를 더 바라는 것 같다.
p366
당이 권력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 자체가 자기보다 강한 타인에 의해 통치되거나 체계적으로 기만을 당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유와 행복 중 어느 한편을 선택해야 하는데, 대부분 행복을 더 선호한다.
(> 자유와 행복은 어느 한 쪽만 선택이 가능한 문제일까? 나는 자유롭기 때문에 행복하다. 자유는 행복의 선제조건일 수 있다.)
p367
" 당은 오직 그 자체의 이익을 위해서 권력을 추구하네. 우리는 타인의 행복 따위에는 관심도 없네. 오로지 권력에만 관심을 둘 뿐이지. ... 권력은 수단이 아닐세. 목적 그 자체이네. 혁명을 보장하기 위해서 독재를 행사하는 게 아니라 독재를 하기 위해서 혁명을 일으키는 걸세. 박해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박해일 뿐이네. 고문의 목적은 고문이고 말일세. 그처럼 권력의 목적도 권력 그 자체이네. 이제 내 말을 이해하겠나?
(> 권력이란 뭘까. 권력이 주는 이득. 절대권력을 차지하고 나면 그 후엔 뭐가 있을까? 그 후란게 있긴 한걸까. 그건 지속되는 무언가일까.)
p369
"우선 자네가 알아야 할 건 권력이란 집단적이란 사실일세. 개인은 오직 개인임을 포기할 때만 권력을 갖게 되지. '자유는 예속'이란 당의 슬로건을 알고 있지? 혹시 그것을 뒤집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나? 예속은 자유라고 말일세. 혼자 있는 인간, 다시 말해 자유로운 인간은 언제나 패배하네. 모든 인간은 언젠가는 죽기 마련이고, 죽음은 가장 커다란 패배이기 때문이지.하지만 인간이 철저하고 완전하게 복종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버리고 스스로 당이 될 만큼 당의 일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그때는 불멸의 전능한 존재가 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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